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

어떤 왜곡은  도움이 된다 

‘안경 벗기’가 알려준 경계 넘기의 미덕 
양다솔
양다솔

글쓰기 소상공인, 비건 지향인, 생활 다도인이자 가끔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 망설이지 않으면서도, 다도·요가·요리처럼 애정을 쏟는 일은 꾸준히 이어오며 자기 세계를 충실하게 가꾸어왔다.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를 발행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아무튼, 친구〉, 〈적당한 실례〉를 썼다. 글쓰기 공동체 ‘까불이 글방’의 글방지기이며,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에서 ‘슬퍼지려 하기 전에’를 진행한다. 웃기와 웃기기를 두루 좋아하고, 충북과 서울을 오가며 지낸다.

Editor’s Comment

우리는 무엇이든 물으면 곧장 대답해주고, 손쉽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ㅡ‘나는 어떤 삶을 원하지?’ ‘무엇이 나다운 선택이지?’ㅡ 에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과 마주할 때에만 진실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튤립의 에세이 시리즈 ‘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은 이 물음에 주체적으로 응답하며 자기 삶을 기획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길어 올린 질문과 선택 끝에 피어난 ‘자기다움’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의 여정이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좌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여덟 번째 에세이는 평생 안경과 함께 살아온 작가 양다솔의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그는 두꺼운 안경 렌즈와 콘택트렌즈 사이에서 선명함과 모호함이라는 두 세계를 쉼 없이 오갔다. 나아가 그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에 고요히 머물렀다. 또렷하게 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흐릿함이 선사하는 선물 같은 순간을 발견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공감을 넘어 자존감과 자유의 감각을 일깨운다. 세상의 빠른 흐름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싶은 사람, 내면의 나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사람,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에게 이 글은 든든한 친구이자 고요한 증명처럼 다가올 것이다.

두 알짜리 프레임에서 시작된 세상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으로 안경을 찾는다. 나는 누군가의 얼굴에 눈코입이 제대로 달려있는지도 분간할 수 없다. ‘뵈는 게 없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나는 언제든 사람 구실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바로 안경이 없으면 됐다. 안경을 찾지 못하면 집 안에 있는 누군가를 소리쳐 부른다. 누군가 와서 내 안경을 찾아줄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 그 두 알짜리 프레임에서 내 세상은 시작된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서 내겐 큰 왜곡이 필요하다. 내 안경은 렌즈를 세 번을 압축하고도 일본에 있는 카메라 렌즈 회사까지 다녀와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가까이 가져다 대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두께다. 가격도 비싸서, 한 번 맞출 때마다 적금을 헐어야 할 정도다. 안경은 무거워서 곧잘 코를 타고 미끄러졌고, 안경을 쓰면 멀미가 날 것처럼 어지러웠다. 머리가 핑 도는 동시에 모든 것이 튀어나올 듯이 선명해졌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내 얼굴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 눈이라고 말했다. 커다랗고, 똘망똘망한 눈. 자칫 부릅떴다가는 조금 사나워지는 눈. 총명함이 드문드문 비치는 눈. 그 위에 두꺼운 안경을 얹으면 눈은 콩알만큼 작아졌다. 엄마는 혀를 쯧 찼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 가려지는 게 안타깝다는 듯이. 안경은 언제나 내 얼굴의 기본값이었다. 그것은 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안과에 가면 의사가 내 눈이 서서히 앞으로 돌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눈이 안경까지를 자기 일부라고 인식해 점점 앞으로 밀착하려 한다고 했다. 내 얼굴은 여전히 진화의 과정 중에 있던 것이다. 안경을 제외한 내 얼굴이 갈수록 어색해지고 있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안경을 끼는 이가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도 안경을 끼지 않았다. 뉴스에도, 드라마에도, 영화에도 안경을 낀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간혹 등장하는 안경은 부가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였다. 보통 똑똑한 역할로 등장하는 남자 배우가 안경을 쓰고 등장했는데, 렌즈의 왜곡이 전혀 없는 텅텅 빈 가짜 안경은 순전히 지식의 상징이었다. 여주인공들도 드물게 안경을 착용했는데, 안경을 벗게 되면서 이들의 변화가 시작됐다. 눈에 뵈는 것은 없었지만 나는 금세 알아챘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안경을 껴야 했고, 나아가서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상황을 인식한 10대의 나는 용돈을 모아 콘택트렌즈를 샀다. 그리고 안경을 벗었다. 콘택트렌즈는 내 시력을 교정하기엔 한참 부족했지만, 나는 그저 내가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시력을 받아들이며 침침한 눈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가 진짜 안경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만으로 과히 만족했다. 눈이 건조해지고 퍼석해지고 벌겋게 충혈되어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다래끼가 나거나 결막염이 난다고 해도 바득바득 렌즈를 꼈다.

오히려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두꺼운 안경을 쓴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실망하겠지. 나는 집에 돌아가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을 때야 안경을 벗었다. 렌즈를 빼고, 다시 안경을 꼈다. 그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대의 나는 돈을 조금 더 모아 하드 렌즈를 샀다. 하드 렌즈는 장시간 착용감이 좋고 나와 같은 심각한 저시력자에게도 적절한 시력 교정을 제공한다. 단점은 먼지와 이물질에 취약했다. 눈에 하루에도 얼마큼의 먼지가 들어갈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별안간 철 수세미로 눈을 박박 긁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그것이 빠져나갈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우는 방법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언제 어느 때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친구와 거리를 걸으며 한참 수다를 떨던 중에 그것이 찾아왔다. 나는 우뚝 멈춰 서서 줄줄 울기 시작했다. 친구가 “왜 그래?”라고 물었고 나는 엄청난 고통에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울었던 나머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서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후에 진실을 말하자 친구가 놀라며 렌즈를 빼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친구에게 소녀시대의 ‘I got a boy’라는 곡을 들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 깜짝! 멘붕이야! 그 사람은 내 민낯이 궁금하대. 완전 맘에 들어 못 이긴 척 보여줘도 괜찮을까? / 오우! 절대로 안 되지! 그치? 그치? / 우리, 지킬 건 지키자! 맞지! 맞지!” 이 명곡의 가사대로, 지킬 건 지켜야 했다. 여전히 내가 안경을 끼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내 세상은 평화로웠다. 렌즈를 낄 수 없다면 그냥 안경을 벗고 뭐라도 보이는 척 행세하는 편이 나았다.

가장 큰 비밀은 가장 큰 증표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턴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안경을 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특별함의 표시이자 인생을 건 실험이었다. 여러 번의 만남을 거쳐 신뢰를 쌓고, 너에게는 이제 내 최대 약점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으로 나는 불시에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너무 놀라지 마”라고 말하며. 반응은 다양했다. 그러고 지나다니면 몰라보겠다, 친근하다, 순해 보인다. 하지만 왜 안경을 그냥 쓰고 다니지 않냐는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뭔가 대단한 것을 준 듯이 말하곤 했다. “너한텐 보여줬잖아.”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심히 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살짝 돌출된 안구를 가진 이들을. 안경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고 또는 굳이 내색하지 않으며, 그렇게 끝내 들키지 않은 이들을. 그렇지만 실은 안경을 꼈을 때만이 ‘살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을. 나는 이들을 ‘투명 안경 클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빛은 라식과 라섹으로 반짝였다. 많은 이들이 각막을 깎고, 영구적인 렌즈를 눈 안에 삽입함으로써 안경의 시대를 통과해 정상으로 넘어갔다. 눈을 떠서 안경을 찾지 않아도 되는, 안경 쓴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안경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세계를 끝내 지워냈다. 놀라운 점은 그런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축복과도 같았고, 동시에 쓸쓸한 일이었다.

도시의 빛은 라식과 라섹으로 반짝였다.

많은 이들이 안경의 시대를 통과해 넘어갔다.

새로운 눈을 갖는다면 무엇을 잃게 될까

안경을 새로 맞춰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새 안경은 130만 원이었고, 방학 이벤트를 맞아 라섹은 99만 원이었다. 새 안경보다 새 눈이 싸다니, 분명히 기이한 현상이었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어서 안경을 벗으라’고 하는 듯했다. 눈은 단 두 개뿐이고,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였다. 시술에 대한 안 좋은 후기는 인터넷에서 몇 분만 검색해도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시술 이후 눈이 건강한 것은 딱 10년이라고 말했다. 안경을 쓰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게 아니면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흐릿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잘 보이는 눈으로 사는 10년이라니, 그거라면 꽤 괜찮겠는데.

강남에 솟아있는 거대한 안과 빌딩으로 향했다. 모 앱에서 전국 평판 1위로 선정된 곳이었다. 당일 진료와 당일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었다. 검진실 안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마트 계산대에 올려진 물건들처럼 줄지어 옆으로,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왼쪽 눈을 가리고 있다가 다음은 오른쪽 눈을 가리더니, 안경을 꼈던 사람이 곧 안경을 벗고 나왔다. 그야말로 광명을 찾는 행렬이었다. 나는 기묘함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출발점에 섰다. 새로운 눈으로 이곳을 나갈 수 있다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 삶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나는 안과에서 쫓겨났다. 의사는 말했다. “어떤 시술로도 이 눈을 나아지게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박물관에 갔을 때 왕실에서 사용하던 최초의 안경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사람답게, 혹은 사람스럽게, 흡사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이스 타이밍!’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조금이라도 가난하게 태어났다면 내 삶은 웃을 구석 하나 없는 완전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안과의 긴 행렬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면 과연 내가 잃는 것이 있을까.

그때 나에게 떠오른 것은 부연(浮硏)의 세계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언제나 투명한 안개였다. 경계는 지워지고, 모든 것이 겹치고 섞이고 뭉개졌다. 색과 면만이 남았다. 거대한 마녀의 수프처럼, 동그라미와 색만이 있는 세계에 포근히 둘러싸였다. 나는 종종 혼자 남고 싶을 적마다 안경을 벗어버리곤 했다. 가장 익숙한 길에서, 가장 익숙한 순간에 나는 안경을 벗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시야를 포기한 순간 세상은 고요해졌다. 어떤 것도 나와 접촉할 수 없었다. 부드러운 막이 나를 감쌌다. 모든 것이 우주 먼지처럼 보이는 곳에 나만 남았다. 나는 그 사이를 부유하듯 떠다녔다. 언제든 나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로 그 세계를 잃을 것이었다. 그것이 아주 잠시, 아쉬워지려던 참이었다.

이 눈이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 되어버린 그 순간에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바로 안경이 없으면 됐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명해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시시각각 뚜렷이 느껴지는 세계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차 무관해지는 세계가 나에게는 있었다. 선명함과 모호함, 그 사이에 오롯이 서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었다. 나는 다시 안경을 벗었다. 오롯이 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하기 위해 한 서점 앞에 도착한 때였다. 행사를 앞두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려는데 순간 가방에 렌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다급하게 근처 안경원을 찾았다. 가공할 속도로 달려 내 시력에 맞는 일회용 렌즈를 구매했다. 그리고 안경을 벗었다. 혼비백산이 된 얼굴을 털어내고 서점으로 향했다. 나중에 보니 렌즈는 내 가방 안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렇게 여전히, 안경은 중대사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안경을 낀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당신이 지금까지 몰랐듯이.

나는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안경을 찾는다. 찾지 못하면 누군가를 소리쳐 부른다. 그것을 허물거나 고집하지 않으며 흐른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오가며 두 세계를 천천히 내 것으로 한다.logo icon

나를 채운 조각들 | 다도, 요가, 원피스

다도 안경을 쓰고 하기에 가장 좋은 일은 다도가 아닌가 싶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안경을 찾고, 다음으로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린다. 나의 스승이 나에게 이르길, ‘이 사람은 늘 머릿속은 어수선하고 삶은 단정하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저항 없이 터지며, 삶이라도 단정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 거의 반자동적으로 그날의 찻잎을 골라 저울에 그램 수를 재고, 찻주전자를 골라 찻잎을 넣는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찻잎을 팔팔 끓는 물로 깨워내며 나도 잠에서 깬다. 차를 한번 씻어낼 때 내 마음도 씻어낸다. 몸은 고요히 앉아 있지만 영혼은 신나게 샤워를 한다. 새로운 아침을 축하한다.

요가 어떤 요가원 때문에 동네를 선택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시골짜기에 살고 있고 이곳에는 딱 하나의 요가원이 있다. 우연처럼 생겨난 그 요가원이 내 운명의 요가원이 될 확률에 대해 생각한다. 집에서조차 편히 잠들지 못해 매일 밤 수면제를 먹는 나는 유일하게 이 요가원에서 스르르 잠이 든다. 마음의 창문을 열고 싶을 때, 마음을 단단히 뒤집고 싶을 때 요가원을 찾는다. 수련을 앞두고 늘 안경을 벗는다. 세상을 향하는 모든 시야를 포기하고, 오롯이 나만을 매트 위에 남겨둔다. 지도자의 목소리만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춤을 추듯이, 기도하듯이.

원피스 빨리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보고 싶었을 뿐인데, 가장 긴 이야기를 골라버리고 말았다. 보통 ‘원피스’를 보는 이들은 서로에게 “지금 어디에 계세요?”라고 묻는데, 웃긴 얘기다. 네 앞에 있잖아. 진짜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지금 와노쿠니에 있다. ‘원피스’는 나에게 일상 소음으로,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재생되고 있다. ‘원피스’를 보다 보면 세상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세상일을 하다 보면 어서 일을 끝내고 ‘원피스’를 보고 싶어진다. 언젠가 한 사람은 나에게 ‘해적왕’이라는 이름으로 책에 사인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내가 ‘원피스’를 보냐고 묻자 그가 크게 기뻐하며 가방에 있던 루피 피규어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런고로 루피는 내 책장에 서 있다.

Editor. 박혜강 
May, 2026
#나라는세상의기획자들#양다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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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

작가·스탠드업 코미디언·글방지기

저서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2021), 〈아무튼, 친구〉(2023), 〈적당한 실례〉(2024),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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