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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수영선수 문재권: 
챔피언이 슬럼프를 
빠져나오는 방법 

“이길 수만 있다면 라이벌에게도 배웁니다” 
최고의 선수는 부상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김윤혜
2025.2.5
문재권수영선수
1998년생, 연세대학교 재학, 서귀포시청 소속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수영 평영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5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주요 수상 내역
  • 2023 105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평영 50m 1위 
  • 2018 뉴사우스웨일스 스테이트오픈 챔피언십 남자 평영 100m 금메달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수영 혼성 4x100m 혼계영 동메달 
운동선수들만큼 슬럼프를 자주 겪는 이들이 또 있을까? 특히나 수영처럼 자신이 세운 기록과 계속 싸워야 하는 종목이라면 슬럼프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일 것이다.
문재권 선수는 데뷔 때부터 1등을 놓친 적 없던 수영 챔피언이다. 국가대표로서 아시안게임 등 보유하고 있는 신기록만 5개가 넘는다. 그러나 최고의 선수도 누적된 부상과 그 후유증으로 오는 긴 슬럼프를 피해갈 순 없다. 그는 처음으로 선수 인생에서 긴 겨울을 맞게 됐다.
갑자기 들이닥친 성적 부진의 시기, 그는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고 또 어떻게 새로운 봄을 준비했을까? 각자의 겨울을 나고 있는 우리에게 문재권 선수보다 겨울을 잘 나는 법을 들려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부상 후 복귀한 시즌에서 다시 이전의 신기록에 가까워지며 봄을 맞고 있는 문재권 선수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Contents
1
챔피언의 겨울 훈련 
2
국가대표 선수들의 일상 
3
시합 당일 챔피언의 마음 
4
자기다움을 찾는 법 
5
슬럼프를 지나는 법 
6
기록이 깨지는 순간 
Chapter 1챔피언의 겨울 훈련 
프로 수영선수들도 아침에 물 들어가기가 무섭나요? 특히나 요즘 같은 겨울의 수영장은 아침에 얼마나 더 추울지 감도 안 오네요.
선수들도 똑같아요. 아무리 오래 해도 차가워요. 선수들은 보통 오전 운동, 오후 운동 하루에 최소 2번을 물에 들어가는데요. 그 두 번이 다 똑같이 싫습니다. 요즘 같은 겨울은 당연히 특히 더요. 눈 질끈 감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죠.
덜 고통스러운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춥다고 한 발 한 발 들어가진 않겠죠?
그래도 선수인데.. 당연히 한 번에 푹 들어갑니다. 선수들마다 자기만의 루틴이 있어요. 다이빙으로 입수하거나 플립 턴을 하거나. 수영장 가면 5미터쯤에 설치되어 있는 깃발 보신 적 있죠? 그걸 점프해서 쳐서 들어가는 게 제 루틴이에요. 너무 들어가기 싫으니까 재미를 넣어서 극복하는 거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어때요? 선수들도 힘든가요.
아, 이건 그렇진 않아요. 아침에 그냥 기계적으로 눈이 떠지거든요. 아무래도 본업이 운동이다 보니, 너무 오래된 습관이라 그런 것 같아요.
Chapter 2국가대표 선수들의 일상 
문재권 선수는 부상 중에도 한국 신기록을 깬 것으로 수영계에서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훈련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보통 어느 정도로 하나요.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은 오전이랑 오후엔 수영을 하고 저녁엔 웨이트,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운동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운동하고, 일요일에 쉽니다.
수영은 다른 종목들이랑 달리, ‘물감’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요. 딱 하루만 운동을 안 해도 물에 들어갔을 때 몸의 느낌이 확 달라져요. 그래서 수영선수들은 다들 휴가도 잘 안 가요. 감을 잃으면 돌아올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DOHA FINA Swimming World Cup ⓒ문재권
국가대표 수영선수로서의 삶, 일반인으로서는 사실 이해가 안 가요. 대체 어떤 마음이면 그런 고강도의 일상을 버틸 수 있죠?
어릴 때부터 너무 당연하게 이 세계에 속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나, 문화들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거든요.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다른 기회가 있는지 잘 모른 상태에서 어릴 때부터 훈련받는 삶을 살다 보니 불만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불편감, 답답함이 생각보다 없어요.
이 안에 있을 때는 기록 올리고, 대회 나가서 이기고, 국위 선양하고 이런 것들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모든 훈련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선수 생활을 마친 은퇴 후에는 다음 커리어에 대해 갑자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긴 합니다.
게다가 실업팀이 아니라, 연세대학교 진학도 하셨잖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대학 생활의 모습은 어땠나요.
대학 생활 내내 대학 동기들이랑 술 마시러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동아리도 당연히 못 했고요. 아카라카(연세대 축제)도 한 번도 못 가봤네요.
아카라카는 연대생도 아닌 저도 대학 때 가봤는데..
갈 수가 없었어요. 저는 수업 끝나면 바로 훈련하러 가야 했거든요. 친구를 사귀긴 해도,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 수업 때 좀 보고 그러는 사이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오늘은 나도 훈련 쉬고 놀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안 들었나요?
저도 사람인데 놀고 싶었죠. 근데 오늘 모임 가서 ‘아 재밌게 잘 놀았다’ 할래, 아니면 올해 아시안게임 기록 잘 나올래, 하면 전 무조건 후자였어요. 특히 대학 입학 후 몇 년은 내내 퍼포먼스도 정말 좋았고, 외부 서포트나 주변 기대치가 높았거든요. 대학 생활 물론 저도 즐겨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둘 중 고르라고 하면 수영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던 거죠.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선수촌에 있으면, 서로의 훈련이 다 보이잖아요.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대표팀 가면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없죠. 모두가 열심히 하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노력만으로 안 되는 영역이 분명 있다는 걸. 결국은 재능이다, 이런 말들이 그래서 있는 것 같아요.
옆에서 훈련하다 보니 더 자극되는 분위기가 돼요. 서로 친하다고 알려진 선우나 우민이 같은 선수들도 사실 운동 시작하면 진짜 분위기 살벌해져요. 다들 죽을 만큼 해요.
차별화를 어떻게 하죠? 더 앞서나가고 싶어도 막막하겠는데요. 문재권 선수는 난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해봤다, 이런 게 있을까요.
전 일요일도 수영 했었어요. 뒷운동 같은 거죠.
뒷운동이요? 유튜버 뒷광고도 아니고, 뒷운동이라니 흥미로워요.
다른 선수들 쉴 때 몰래 하루 더 운동하는 건데요. 주 6일 운동이 훈련 루틴인데, 일요일에 혼자 나가서 운동하는 거죠. 일요일마다 안 쉬고 2시간, 4시간씩 몰래 했어요.
아무도 모르게요? 코치님도요?
딱 한 명 더 있었거든요? 그 친구만 알았어요. 쉰다고 하고 수영장 가면 서로 마주치고, 웨이트장 가면 있고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죠. 서로 마주치면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이러면서 서로 놀렸죠. 그게 저한테 정말 좋은 자극이 됐어요.
코치님도 모르셨어요. 원래는 쉬어야 하는 날이니까요. 보통은 다들 사람 만나러 나가고, 취미 생활 하거나 쉬거나 하거든요.
이미 한계치까지 운동한 상태일 텐데 왜 그렇게까지..
일요일날 그렇게 하잖아요? 그럼 다음 주 기량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가요. 아까 말씀드린 ‘물감’이라는 게 확 달라지거든요. “와, 내가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도파민이 폭발하죠. 그걸 경험하고 나면요. 못 쉬어요. 그냥 하게 돼요.
그래서 중요한 경기 출전 전 두 달은 꼭 그렇게 했습니다. 가끔 마주치는 그 친구 말고는 아마 다들 몰랐을 거예요.
일요일마저 그렇게 지내면, 개인 생활이나 연애는요?
시즌 중에 바쁜 건 맞아요. 그래도 경기 직전이 아니면 대부분은 토요일 반나절, 일요일은 시간이 나긴 하니까요. 그리고 선수들만의 장점도 있죠. 운동 끝나면 머리가 깔끔하게 비워지거든요. 운동 외의 시간은 오히려 상대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긴 해요.
선수들은 대부분 연애가 안정적일 때 성적도 잘 나오거든요. 그래서 다들 시간 관리 잘 해가면서 연애도 놓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자기 일 좋아하고, 열심히 사는 분한테 매력을 느끼는 편이라 제가 선수 생활하는 게 연애에 문제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Chapter 3시합 당일 챔피언의 마음 
시합 당일은 어떤지 궁금해요. 종목을 불문하고 다들 결과는 잘 생각 안 한다고 하잖아요. 열심히 했으니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정말 시합 당일엔 결과 생각 없이 하나요?
물론 훈련하는 동안은 결과를 생각하죠. 시상식 올라가는 모습 상상하면서 동기 부여 받지 어떻게 결과를 생각 안 하겠어요.
근데 시합 뛰기 전엔 그걸 생각하면 안 돼요. 과정에 집중해야지 결과를 떠올리는 순간 엉망이 되거든요. 시합 당일엔 이미지 트레이닝만 하는 거예요. 스타트 하고, 킥 몇 번 차고, 턴하고. 이런 큰 프로세스를 되새겨요. 이 과정만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꼭 이겨야 된다 생각하는 순간 경기는 망해요.
ⓒ문재권
그럼 출발 직전엔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너무 긴장되는데 발바닥에 물이 닿는 순간부터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나 이렇게 페이스 잡아야 되고, 이겨야 되고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더라고요. 훈련 이미 잘 했잖아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야 해요. 출발 직전엔 ‘빨리 뛰지 말자, 움찔하지 말자, 듣고 뛰자 제발.’ 이것만 계속 생각해요.
시합에서 연습 때처럼 기량이 잘 나오나요? 오히려 연습 때 떨지 않아서 최고 기록이 나오고 하진 않나요.
네, 선수들은 항상 경기에서 기록을 깨요. 긴장이 있고, 관중도 있고 하다 보니 거기에 고양돼요. 연습 때 세계신기록은 절대 못 깨죠. 저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시합 때 베스트가 나와요.
물론 너무 긴장해서 시합 때만 망하는 선수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긴장하고 집중하고 하다 보니 시합 때 최고 기록이 나와요.
시합 전에 오늘 잘 하겠다, 감이 오나요?
대체로 알아요. 예선이 있으니까요. 예선 기록 보고, 오늘 괜찮겠는데? 승부 해볼 만하다, 생각이 들어요.
제 주종목인 단거리는 승부가 0.1초, 0.2초 차로 갈리거든요. 고작 0.05초 차인데, 마지막에 속으로 ‘아, 졌다.’ 생각하고 터치하면 성적이 안 좋고요. ‘뭐야, 그냥 이기겠는데?’하면서 터치하고 보면 정말로 기록이 그래요.
시합 중에 옆 사람을 볼 수도 없고, 너무 간발의 차라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근데 선수의 감이랄까 자신감이랄까 그런 게 신기하게 맞아요. 그냥 달라요, 느낌이.
시합 당일, 압박감은 어떻게 견디세요?
혼잣말해요, 영어로. 예전에 호주에서 만난 제 코치가 항상 경기 전에 해 주셨던 말이 있는데요. 사실 별말 아니거든요? “Trust yourself.” 이런 말들이에요. 뇌 비우고 자신을 믿어라 뭐 이런 평범한 말들.
이상한 게 똑같은 말도 ‘집중하자’ 이렇게 한국어로 말할 때는 와닿지가 않는데, 영어로 하면 저를 설득하는 게 쉽더라고요. 제가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닌데도 그랬어요.
영어만 먹힌다는 게 재밌어요. 왜 그런 걸까요? 주문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호주에서 훈련받았던 게, 저한테는 진정한 프로 생활의 시작이었거든요. 사소한 식단 관리부터 경기 운용까지 모든 걸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저한테 새로운 경험을 준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눈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라 그런 것 같아요. 오케이, 주문처럼 외우고 하니까 경기가 진짜 잘 되더라고요.
Chapter 4자기다움을 찾는 법 
선수들마다 강점이 다를 텐데요. 문재권 선수는 필살기가 뭔가요?
저는 템포요. 평영은 영법(기술)이 중요한 종목이거든요. 자기한테 잘 맞는 영법을 찾는 게 핵심이에요.
수영은 팔힘이 좋아서 풀(pull)을 잘 하는 게 장점일 수 있고, 발차기를 잘 차서 빠를 수가 있거든요. 전 둘 다 아니었어요. 풀만 보면 중간 정도, 킥은 여자 선수들한테도 져요. 근데 풀과 킥을 합쳐서 평영을 딱 하면, 제가 이기는 거죠.
풀과 킥 두 개가 제일 뛰어난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걸 최적의 조합으로 찾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군요.
네. 제 특성에 맞는 조합을 잘 찾았던 것 같아요. 저만의 평영을 찾은 거죠.
선수들은 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 게 과제겠군요. 엉뚱한 ‘추구미’를 가져서 실패하는 케이스도 있으려나요.
수영은 결국 빠른 게 정답이 되는 종목이잖아요. 근데 예쁘게 수영하는 걸 추구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어요. 수영은 물속 동작이 중요한데, 밖에서 예쁘게 보이려고 폼을 신경 쓰는 거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근데 승리에 진심인 사람들은 자기 ‘추구미’에 갇혀있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잘하는 선수일수록, 승리에 기존 스타일이 도움 안 되면 과감하게 버려요.
수영복은 어때요? 수영은 다른 장비가 없는데, 수영복마다 차이가 큰가요?
차이 엄청 커요. 종류도 엄청 다양하고요. 선수용 수영복은 너무 꽉 끼어서 입는 데만 10분은 걸리는데요.
가동성을 더 중시하는 선수도 있고 부력을 더 중시하는 선수도 있어요. 저는 부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수영복은 보통 아레나, 스피도를 많이 입는데 전 후원사가 스피도라 스피도만 초등학생 때부터 입었고요.
제품별로 차이가 정말 커서 본인한테 맞는 수영복을 찾는 게 진짜 중요해요.
Chapter 5슬럼프를 지나는 법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나요?
최근 3년 정도가 제일 힘들었죠. 사실 부상 전까지는 이상할 정도로 정체기가 없었거든요.
슬럼프를 경험한 적 없는 챔피언이라니.. 역설적으로 더 힘들었겠네요.
낯설었어요. 운동선수들은 부상이 오면 통증을 피하기 위해 동작을 바꾸거든요. 안 바꾸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보상 작용으로 움직임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이게 사실 굉장히 독인데, 어쨌든 통증은 확 줄죠.
동작 바꾸고,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런 상태에서 시합을 뛰기 때문에 시합 당시에는 통증은 못 느끼거든요. 그렇다 보니 제 스스로도 어느 순간 되니까 이게 온전히 부상 때문만이라고 100% 말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혼란스럽더라고요.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나요?
제가 지금 깨고 싶은 기록이 59초대 진입인데요. 2023년에 00초 02가 나왔어요. 0.03초만 빨랐으면 되는 건데. 부상 후에도 계속 버텨왔는데 저 기록이 5년 만에 나고도 결국 못 넘으니까 지치더라고요.
전에 했던 노력보다 1.5배는 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러고 나니 수영이 처음으로 질리더라고요. 난 그동안 이걸 잘해서 했을 뿐이었던 건가? 스스로 회의감이 드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라이벌인 동료들을 보는 마음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원래는 라이벌이 없었어요. 2등, 3등인 친구들과 기록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근데 그 친구들 지금 다 1등하고 그래요. 너무 뛰어나요. 진짜 잘해요.
처음엔 힘들었죠. 승부욕 강한 게 그동안 장점이었는데, 부상 오고 나니까 독이 되더라고요. 라이벌이 생기고, 그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재활하며 쉬어야 할 때도 쉴 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이제는 괜찮아요. 오히려 그 친구들 응원하죠. 그냥 이 길에서 해법을 또 찾으려고 했어요. 응원해 주는 걸로.
응원이요? 생각이 어떤 식으로 달라졌나요.
오히려 너희한테 배우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기 뛸 때만 적으로 생각하고, 그 외의 시간들은 모방하고 배우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기면 되는 거니까요.
모방하고 배워서 이길 수 있다면 그게 또 새로운 저의 fit일 수도 있는 거고요. 자존심 안 부리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길 수만 있다면 상관없으니까요.
자존심 안 부리는 거죠.
그렇게 해서이길 수만 있다면
전 상관 없으니까요.
Chapter 6기록이 깨지는 순간 
기록이 정체되어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이 드나요. 지루하지 않나요.
훈련 자체가 그렇게 지루하진 않아요. 그냥 똑같이 반복하는 게 아니라, 계속 전략을 바꾸거든요. “초반 50을 달리고, 후반을 버텨봐", “초반을 여유 있게 가고 후반에 뽑아보자” 이런 식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모든 방법을 실험해 봐요.
기록 깨야겠다 그 생각뿐이죠. 매번 욕하면서 그냥 해요. 나중 되면 기도도 하게 돼요. 전 종교가 없는데도 그냥 아무나 나오라고 막 기도하는 거죠. 하느님 한 번만 도와달라고.
기록이 어떻게 깨지는지 과정이 궁금해요. 수영은 보통 초를 다투게 되잖아요.
계단식이죠. 절대 우상향 그리지 않아요. 오히려 중간에 내리막이 나오고 그래요.
보통 한 계단이 1년 정도라고 보면 돼요. 수영에서 보통 이 점프는 0.3초, 0.5초 정도.
1초도 아니고, 0.3초를 위해 1년을 쓴다고요?
1년이면 감사하죠. 전 0.2초 때문에 5년도 투자하는데요. 그래서 다들 지치긴 해요.
그럼 기록이 깨질 땐 어떻게 깨져요?
되게 신기한 건데요. 똑같이 했는데 갑자기 기록이 깨져요. 27초 8, 27초 7, 27초 9, 28초 3, 28초 5 이러다가 갑자기 27초 5 이렇게 훅 내려가요. 일 년쯤 훈련했고, 평소랑 똑같이 했을 뿐인데 그냥 기록이 튀는 거죠. 경기하다 아드레날린이 팍 터지면서, 지치는 것도 모르고 터치를 했는데, 어? 뭐야 정신 차려보면 한국 신기록이 딱 깨져있고. 근데 복기를 못해요. 어떻게 한 건지 스스로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되는 거라서.
재권님만의 이 여정을 통해 얻은 비밀스러운 배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생각보다 뜻대로 안 될 때가 더 많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 안 되더라도 자기 비하를 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 오정세가 백상예술대상 수상소감에서 그러더라고요. 그전까지 100편 넘는 작품들 모두 동백이만큼 열심히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고. 평소랑 똑같이 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그 말에 100% 공감했어요. 시합도 그래요. 어떨 땐 정말 노력이랑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컨디션 안 좋은데 기록이 깨지기도 하고, 아무리 해도 기록이 꿈쩍도 안 하기도 하고.
지금 아직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요?
분명 겨울은 지나가지만,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 같아요. 몸부림을 계속 쳤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하던 대로는 안 된다는 거니까, 다른 방법으로 바꿔보는 거죠. 모든 방법을 다 해보는 거예요.
물론 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자신이 찾은 방법이라면. 하지만 멍하니 손놓고 나아지겠지,라는 생각만으로는 겨울을 끝내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등바등하다 결과적으론 잘 안되어도, 그것조차 나를 바꾸는 과정일 수 있으니까요.
1년이면 감사하죠.0.2초 때문에5년도 투자하는데요.
Epilogue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될 텐데 그래서 선수들에게는 한 해 한 해의 의미가 또 다를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나요?
30년 후에도 몇십 년 후에도, 나중에 지금 제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누구에게 말해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부상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요.
나다움을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해, 질문을 던져본다면요?
“본인이 생각한 안 좋은 면들, 부끄러운 면들을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오랫동안 콤플렉스였던 것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이랑 대화하다 알게 됐어요.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있었더라고요. 진작 물어볼 걸, 후회가 됐죠.
생각보다 남들은 오히려 그게 제 매력이라고 봐주는 것 같아요. 이 질문이 나다움을 찾는 좋은 시작점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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